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샛별룸살롱 살인 사건 (문단 편집) === 장기간 도주 후 검거 === 범인은 범행 신고 하루만인 1990년 1월 30일에 1990년 1월 2일 [[광주광역시|광주]]에서 술집 여종업원을 살해한 조경수, 김태화 2인조로 특정되었다. 하지만 위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도 범인은 한동안 잡히지 않았다. 범행 후 1주일간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고, 1990년 2월 1일을 시작으로 택시 기사를 협박하거나 [[미용실]]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는 등 도주자금을 벌기 위해 범행을 계속했으며, 이 과정에서 그들을 목격했다는 증언은 계속해서 나왔지만, 경찰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. 1990년 2월 10일 [[조선일보]] 3면 기사에는 <警察의 한심한 服務자세>[*번역 경찰의 한심한 복무자세]라는 제목으로 '경찰의 수사력'을 비판하는 사설이 게재되기도 했다. 2월 9일 조경수가 [[부산]]의 [[누나]]에게 [[전화]]를 걸었고, 2월 14일에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[[자수]] 의사를 밝혔으나, 실제로 경찰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아, 이들이 부산에 잠입한 게 아니냐는 추정도 나왔다. (1990년 2월 15일 동아일보 12면 기사 <釜山잠입설에 잔뜩 긴장>) 그러다 1990년 2월 27일 샛별룸살롱에서 500m 정도 떨어진 [[카페]]에 나타났다는 증언이 나왔다. 이때도 경찰은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는데, 잠복경찰이 6명이나 있는데 눈치도 못 채고, 신고자인 박양이 조경수의 애인 이모양과 김태화가 차에 타 데리고 간 걸 신고한 이후에야 알았다. 대담해진 이들은 1990년 3월 3일에는 [[대전]] 거리를 활보하면서 경찰을 가리켜 '나를 잡으러 왔다'는 농담까지 하기도 해, 경찰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졌다. 그리고 이 사실이 보도된 후 이틀만인 1990년 3월 5일 오후 조경수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. 그리고 3월 10일 나머지 한 명의 범인인 김태화가 조건부 자수를 하겠다고 전화한 것으로 덜미가 잡혀 체포되었다. 김태화는 자신의 범행 이유에 대해 '민주화를 위한 행동'이었다며 개소리를 시전하기도 했다. 그는 체포되기 이전 드라마 [[수사반장]]의 실제 모델이었던 당시 서울지방청 [[최중락]] 총경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